『이는 운명에 감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을 찾고, 오직 자신을 괴롭히고 벌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건전한 정신을 지닌 자는 태양이 굽어보는 가운데 「넓은 세상의 산물을 먹고 사는」 수많은 인간 중 몇몇보다 명성이 낮거나 부유하지 못하더라도 슬픔과 낙담에 빠지지 않고, 수많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공정하고 행복하게 자기 운명과 삶에 기뻐하며 본인의 길을 갑니다. 〔…〕
또한 우리도 누군가가 형편이 나쁘고 비참한 곤경에 처했다고 말할 때, 우리가 집정관이나 총독이 아니지만, 「우리 형편은 구걸하지도 않고 짐꾼도 아니며 아첨하며 살지 않아도 되니 훌륭한 상황이고 부러울 만큼 좋은 삶이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는 자신보다는 남을 더 신경 쓰며 사는 데 익숙하고, 천성이 질투와 시기심이 강하여 자기의 복에 기뻐하기보다는 타인의 복에 배가 아픕니다. 그러니 부럽고 감탄하는 자들의 화려한 영광만 보지 말고, 대신 그들의 겉치레와 허영의 요란한 커튼을 걷어 내고 그 안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골칫거리가 많고 짜증 나는 일이 많은 걸 알게 됩니다. 〔…〕』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또 다른 큰 장애물은 우리의 욕구를 수단에 맞게 조절하지 않고, 이른바 위대한 일을 꿈꾸며 과도한 행위를 벌이다가 그 후에 실패하면 운명과 행운을 탓하고 자기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 그러나 스토아학파가 단지 공허한 말만 한다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은 그들의 현자는 신중하고 정의롭고 용감할 뿐만 아니라 웅변가, 장군, 시인, 부자나 왕이라고 정하고, 그 모든 칭호를 요구하며 그것을 얻지 못하면 분개합니다.
그러나 신들 사이에서도 각자에게 다른 역할이 할당되었기에; 한 신은 전쟁의 신, 다른 신은 예언의 신, 또 다른 신은 이득의 신으로 불렸고,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아프로디테에게 제우스는 결혼과 결혼식을 주관하게 했습니다』